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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Story] LG 트윈스 채은성 MEMORIES

dugout*** (dugout***)
2018.07.1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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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위하여 힘차게 날아올라라

 

더워지는 초여름 날씨 탓인지 우리가 사랑하는 야구의 호흡이 유독 숨 가쁘다. 시즌 초와 비슷한 듯 또 다른 흐름으로 저녁마다 손에 땀을 쥐며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가을 야구 행 열차 대기 줄에서 꿋꿋이 버티는 LG 트윈스의 무한 동력을 만났다. 그의 응원가 가사처럼 승리를 위하여 힘차게 날아오를, 채은성이다.

 

Photographer 황미노 Interview 윤태진 Editor 윤다영 Location 잠실야구장

 

안녕하세요.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 여러분, 아나운서 윤태진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어요? 인터뷰가 있기 며칠 전, 시즌 내내 좋은 모습을 보였던 채은성 선수가 돌연 경기 엔트리에서 빠졌어요. 그 이후 바로 포함됐지만, 만날 날을 앞두고 있던 터였기에 내심 걱정이 많이 됐답니다. 그런 제 걱정이 무색하게도 더그아웃에 들어서는 채은성 선수의 얼굴이 밝아 안심이었어요. 그래도 인사 겸 안부를 묻자 호탕한 웃음으로 답해주었어요.

 

“컨디션은 나쁠 틈 없이 계속 좋아요. 훈련 중에 근육통처럼 담 증세가 있었어요. 푹 쉬니 바로 괜찮아졌고 문제될 건 없어요. 시즌 중이니 체력이 떨어질 틈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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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팬들의 걱정을 한시름 덜게 해주는 시원한 답변이네요. 지난 초여름부터 누구보다 후덥지근한 타격감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에요.

타격 자세에서 체중이 앞쪽으로 이동되게끔 신경을 쓴 덕분이 커요. 혼자 고민도 많이 했지만 코치님들이 신경 써주시고 도와주신 결과죠. 구단 전력분석팀에서 제 영상을 비교하면서 조언을 많이 주셨어요.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기도 했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어서 제대로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5번 타자로 든든한 클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어요. 이번 시즌부터 함께하는 김현수에서 채은성으로 이어지는 시너지도 한몫해주고요.

(김)현수 형이랑 나이대도 비슷하니까 조언도 더 편하게 구해요. 체력 운동도 같이 하고요. 배울 점이 많은 형이고 많은 조언, 얘기를 듣고 있어요. 실제로 많이 배울 수 있는 게 가장 좋죠.


좋은 자극이 되어줄 것 같아요. 앞 타석에 김현수가 선다는 것은 시합에서 어떤 영향을 주나요?

같은 팀에 현수 형이 있다는 건 앞서 말씀드렸듯이 더 배울 수 있는 큰 기회죠. 하지만 시합에서 제 앞 타자가 ‘김현수’라는 것은 제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않아요. 저의 한 타석, 한 타석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니까요. 앞에 누가 있고, 뒤에 누가 나오거나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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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 시작부터 지금까지 


선수에게 지금뿐만 아니라 지나온 나날들, 그리고 앞으로의 일들을 모두 물어볼 수 있는 게 바로 ‘더그아웃 스토리’의 매력이죠. 꾸준하게 뚝심 있는 야구를 해온 채은성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어떻게 야구를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어요. 과연 야구와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요?


야구 처음 시작했을 때 기억나세요?

그럼요. 제가 다녔던 학교에는 야구부가 없었어요. 초등학교 때 반에서 운동 신경은 괜찮은 편이었어요. 그맘때 운동 신경 좋은 남자애들이 으레 그러듯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는 했죠. 그러던 중에 야구부가 있는 학교의 감독님이 오셨다가 저를 보셨고 맘에 들어 하셨어요.

 

어린 나이에 스카우트를 받은 셈이네요.

스카우트 아닌 스카우트였죠. (웃음) 처음에는 야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저는 축구를 좋아했었거든요. 애들이랑 공을 차고 노는 게 제일 신날 때였고, 축구 선수가 꿈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축구는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하셨어요.

 

축구를 강경하게 반대하셨는데 야구는 허락해주셨나요?

그도 그럴 게 아버지가 학창시절 내내 축구 선수를 하셨거든요. 축구는 너무 힘들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직접 겪었던 어려움이었기에 더 완고하셨군요.) 그런데 야구는 오히려 먼저 권유하셨어요. 하루만 딱 체험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딱 하루 가서 한번 해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야구와 사랑에 빠지는 데에 딱 하루 걸렸군요.

축구와 비교가 안 되는 재미였어요. 치고 달리는 게 짜릿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처음 해보는 날이었는데 연습 게임에서 어떻게든 세이프되려고 무작정 슬라이딩까지 할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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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에는 포수였다고 들었어요. 포수는 특히 힘들다 보니 아마추어에서도 많이들 꺼려한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선택했나요?

어릴 적부터 포수 체형에 맞아서 포수로 야구를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1년 위 선배가 포수라서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1루나 3루, 내야 포지션에 있었어요. 3학년 때 포수를 하기는 했지만, 3학년 졸업 후에는 포수를 하지 않고 대학을 갈 작정이었거든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 LG에 신고 선수로 입단했어요. 신인 드래프트에서의 좌절이 뼈아팠겠어요.

사실 프로 갈 실력이 되지 못하다는 것을 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계약을 하려고 했지만 녹록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연습생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생겼었죠.

 

그렇게 입단하고 나서 다시 포수 마스크를 썼어요.

처음 입단할 때에는 3루수 자리였는데 고민이 많았어요. 당시 저희 팀 내야수가 심각하게 쟁쟁했거든요. 입단 동기만 봐도 그래요. (오)지환, (김)주형, (문)선재에, 그때는 (서)건창이도 있었어요. 그렇게 두터우니 2군에서도 내야수로 시합을 뛰기가 어렵죠. 그러다가 다른 코치님이 포수로 포지션 변경을 권하셨어요. 2군에 포수가 없었거든요.

 

포지션 변경이 더 부담되지는 않았나요?

그 말씀을 듣지 않고 내야수를 고집하자니, 제가 생각해도 여름에 집에 돌아갈 게 뻔했어요. 포수로 적응하지 못해서 집에 가든, 내야수로 남아 있다가 집에 가든 둘 중 하나였죠. 제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였어요. 결국엔 선택지가 없었던 거죠. 당시 2군에 있을 때 장광호 배터리 코치님께 제일 감사해요. 지금까지도 제가 야구를 할 수 있게 해준 분이에요. 포지션 바꿀 때 담당해주시면서 힘을 많이 써주시고, 도움도 많이 주셨죠. 야구를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하는지, 또 절실히 해야 하는지를 몸소 가르쳐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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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를 일찌감치 마쳤어요. 앞서 말한 유일한 선택지의 연장선인가요?

많이 철들었던 시간이었죠. 군대를 가기 전까지는 그저 막연하게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었어요. 잘 안 된다면 열심히 해야 하고, 그래도 잘 안 된다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요. 군대에 있으면서 열심히 하는 것보다 ‘어떻게’ 열심히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저 야구뿐만이 아니라 많은 부분에 있어서요. 부모님이나, 더 멀리 말하면 제 인생에서요. (웃음)

 

이전에 했던 인터뷰만 봐도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커 보여요.

아들만을 바라보고 살아오셨어요. 그 사실이 크게 와닿지 못했다가 군대 가서 제대로 느꼈어요. 저를 위해서 헌신을 해주셨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스트레스받을 때엔 일부러 연락 안 하세요. 잘할 때는 잘했다고 문자 한 통 보내주시고요. 부담 될까 봐 해주시는 배려라 항상 감사하죠. (야구 선수 채은성은 어떤 아들이에요?) 저는 살가운 아들은 못 돼요. (웃음) 무뚝뚝해요. 표현력이 좋은 편은 아니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표현하려고 노력하는데 이전에는 그러지 못했어요.


차차 자연스럽게 해 나가는 거죠. 다시 군대 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의장대 현역으로 입대해서 그런지, 더그아웃에서 보여주는 의장대다운 배트 돌리기가 중계 카메라에 잡힌 적도 많아요.

군대에 있는 동안, 기다란 게 손에 잡히면 무조건 돌려봤거든요. 군대 제대하고 나서 방망이 잡고 한번 돌려봤는데 총보다 더 잘 돌아가더라고요. 그 이후로 가끔 돌려봐요. (웃음) 입대 당시에는 경찰청이나, 상무를 못 간 게 아쉬웠어요. 연습생 신분이 현역으로 입대하면 소리소문없이 잘리기도 쉬우니까요. (지금도 여전히 아쉽나요?) 제대하고 나니, 일찍 다녀오기를 잘했다 싶어요.

 

제대 후 퓨처스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어요.

일단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뭘 보여주고 군대를 다녀온 게 아니기에 조급했던 것도 있어요. 어떻게든 좋은 모습, 그리고 결과물을 보여줘야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이 통했나 봐요. 첫 1군 프로무대 데뷔전에서 안타를 쳤어요. 양상문 전 감독님이 안타를 친 공에 ‘대선수가 되세요’라는 글귀를 적어주기도 했고요. 무언가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어도 감사하고 감동적인 말씀이에요.

많이 감사하죠. 저에게 많은 기회를 주셨어요. 잘할 때도 있었지만 주셨던 기회에 비해 못한 적도 많았어요. 저 때문에 욕도 많이 들으셨어요. 감사하면서도 죄송한 일이죠. 앞으로 제가 잘하는 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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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잘 보관하고 있나요?

그럼요. 집에 여러 기념구가 있지만 그중 제가 제일 아끼는 공이에요. 그래서 집에 잘 보이는 곳에 잘 보관해뒀답니다.

 

지금의 채은성이 있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것은 무엇인가요?

군대 다녀와서 처음부터 잘 되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때 공을 못 던지는 입스가 슬펐어요. 스티븐 블래스 증후군 혹은 입스라고 하는데 3군 시합하는데도 시합 진행이 안 될 정도로 공을 아예 던지지를 못했어요. 그런 시련이 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죠.

 

괴롭고 힘들었던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어요?

포지션 변경이요. (웃음) 극복하기 위해 정말 많은 걸 했어요. 아예 포기해보는 것까지도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일도 알아봤거든요. 야구 선수가 야구를 15년을 가까이 했는데 투수한테 공을 아예 던지지도 못하니까 괴로웠어요. 연습 때는 또 잘 던져지는데 실전, 경기에만 들어가면 아예 안 되었어요. 그러다 포수 마스크 벗었더니 바로 괜찮아졌어요. 결국 심리적인 영향이 가장 컸던 거죠.

 

심리적인 어려움이 있고 난 후, 징크스나 루틴 같은 게 따로 생기진 않았나요?

그다지 없는데, 또 없다고 하기에는 뭐하네요. (웃음) 그날 경기가 잘 풀렸으면, 다음날에 전날 먹은 점심을 한 번 더 먹어봐요. 예를 들어서 설렁탕 먹은 날에 경기가 잘 되면 다음날 경기 전에 설렁탕을 또 먹는 거죠.

 

그럼 징크스가 있는 거네요. (웃음) 가장 효과가 좋은 음식은 무엇인가요?밑져도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시도하고 있어요. 가장 효과가 좋은 음식은 모르겠고 가장 안 맞는 음식은 있어요. 이상하게 갈비탕 먹은 날에는 잘 안돼요. 그래서 갈비탕을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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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야구를 하는 동안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예요?

연습생 신분에서 정식 선수로 등록됐을 때요. 세 자리 등번호에서 두 자리로 바뀔 때 가장 기뻤어요. 프로선수가 되는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그 목표를 이뤄냈으니까요.


그 이후에 등번호를 1, 2년 간격으로 꾸준히 바꿔왔어요. 유니폼 마킹한 팬들의 볼멘소리가 조금 있을 것 같은데요. 지금 등번호 55번에는 정착할 생각인가요?

팬 미팅 때 저한테 똑같은 질문하신 팬이 계셨어요. (웃음) 또 바꿀 거냐고 물으셨는데 또 바꿀 일은 없을 거 같아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번호예요?) 아뇨. 아무 의미도 없어요. 처음 1군 와서 달은 번호가 54번이었어요. 제가 달고 싶었던 번호는 00이었고요. 원래 안 준다고 했는데 욕심내서 00을 겨우 달았더니 이상하게 잘 안 풀리더라고요. 마침 저희 매니저님이 자기 기운이 좋으니까 정해주는 거 써보라면서 55번을 골라줬어요.

 

그 역시 밑져야 본전으로 계속 유지 중인 거군요. 작년부터 안경을 썼는데, 일반 안경이에요. 불편하지는 않아요?

원래 시력이 나쁜 편은 아닌데 난시가 심해졌어요. 어느 날 집에서 TV로 영화를 보는데 아래 깔리는 자막이 뿌옇게 안 보이는 거예요. 처음에는 렌즈를 끼려고 했는데 난시는 렌즈로 잡히지 않는대요. 안경을 쓰니까 또렷하게 잘 보였어요. 안경 선배인 박용택 선배도 안경이 제일 편하다 하셨고요. 스포츠용 안경은 커브가 심해서 난시가 심한 제게는 무용지물이에요.

 

그래도 일반 안경이니까 다칠 위험도 있고, 손자국 나면 신경 쓰이지 않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안경을 꼈던 게 아니니까 안경 자체에 대한 적응이 불편했어요. 비 오는 날이 제일 힘들었어요. 신경도 쓰이고요. 이제는 적응이 많이 돼서 뭐가 묻은 것 같아도 신경 안 써요. (웃음) 다칠 위험이 없지는 않아요. 안경 낀 지 얼마 안 됐을 때 스프링 캠프를 갔는데 얼굴에 공이 온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좀 조심하는 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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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아오를 2018년 

 

진중하면서도 뚝심 있는 채은성의 스토리를 경청하다 보니 어느덧 인터뷰도 막바지로 흘렀어요. 믿음직스러운 5번 타자로 자리매김하는 채은성의 현재 모습에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팬들도 있다고 해요. 2016년에도 올해처럼 빛나는 모습을 보였는데 다음 해인 2017년에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거든요. 팬들의 걱정을 아는지 채은성 선수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라고도 하죠. 1군에서 2년 차였던 작년 다소 부진했어요. 그래서 이번 시즌에도 안심하지 못하는 팬들도 있어요.

작년에는 많이 조급했어요. 말씀하셨듯이 2016년에 잘했고, 그 다음해가 되니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죠. 저 혼자 쫓기는 마음이었고 그래서 늘 불안했어요. 그러니 잘 될 리가 없죠. 심리적인 문제였던 거죠. 그러고 나니 이번 시즌 전에는 많이 포기하고 내려놨어요. 그래서 작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네요.

 

이번 시즌 목표는 당연히 가을 야구 진출과 우승일 거예요. 그 목표를 이루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요?

팀의 성적이 1순위지만 개인 성적이 뛰어나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성적을 일구어낸 주축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이번 시즌을 넘어 나중에 채은성의 야구 인생이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나요?

저는 항상 누군가를 롤모델로 삼고,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로 야구를 해왔어요. 그래서 나중에 저도 누군가의 롤모델, 혹은 우상이 되어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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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채은성의 롤모델은 누구였나요?

롤모델 누구 딱 한 명으로 정해둔 것은 아니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유쾌하고. 팀의 리더가 되어주는 선배들을 롤모델로 삼았어요. LG에 와서는 박용택 선배였어요. 처음 뵀을 때는 제가 입단 전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달랐어요. 학교 다닐 때는 야구를 타고난 천재 같아 보였거든요. 열심히 안 해도 그냥 잘하는 그런 선수요. 그런데 입단해서 보니까 전혀 아니었어요, 항상 노력 많이 하시고, 배울 게 정말 많은 선배예요.

 

그런 선수가 될 것이라 믿어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더그아웃 스토리’에 빠지지 않는 공식 질문이죠. 채은성에게 ‘야구’란 무엇인가요?

평소에 생각을 안 해봐서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그래서 공식 질문이랍니다.) 야구는 제게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줘요. 힘들고, 괴로웠던 고민과 걱정, 근심을 모두 다 이겨내고 야구를 잘하면, 그 어떤 것도 주지 못하는 행복을 안겨주거든요.

 

길었던 인터뷰의 마지막입니다.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야구장 많이 와주셔서 항상 열심히 응원해주신 기운을 받아서 LG가 좋은 분위기 속에서 흐름을 잘 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해 주시면 그 힘으로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

올 한해 찬란히 빛날 채은성 선수의 인사를 끝으로 윤태진의 ‘더그아웃 스토리’는 막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여러분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게 되었어요. 야구 시즌을 끝까지 함께해 왔는데 2018년 시즌의 중간에서 안녕을 말하려니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라고 하죠? '더그아웃 스토리'에서는 안녕이지만 야구를 사랑하는 여러분과 언젠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 믿어요. 야구, 그리고 언제나 고마웠던 <더그아웃 매거진>, 누구보다 사랑하는 독자분들 모두 잘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아나운서 윤태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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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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