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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맨에서 에이스가 되기까지
마운드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지켜보는 팬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선수가 있다. 올해 대체 선발 투수로 시작해 두산 베어스의 기둥 투수로 자리 잡은 최원준이 그렇다. 시즌 초까지만 해도 견고해 보였던 두산의 선발진은 잇따른 부상과 부진으로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렇게 아슬아슬했던 두산의 버팀목으로 나타난 그는 어엿한 선발투수 역할을 해냄과 동시에 9월 29일 기준 10승 1패의 성적으로 승률왕의 자리에도 다다르고 있다. 언뜻 보면 기적처럼 보이는 최원준의 도약은 사실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던 데에는 지금까지 보직과 때에 상관없이 마운드에 올라 묵묵히 자신의 공을 던졌던 날들이 컸다. 지명을 앞두고 해야 했던 팔꿈치 수술과 두 번의 암 수술. 프로 입단 전후로 넘어야 했던 산들은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무너졌던 경기도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성장시켰다. 무수히 넘어져 봤기에 안다. 넘어졌을 때 어떻게 털어내야 하는지,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
Photographer 황미노 Photo 두산베어스 Editor 황유빈 Location 잠실야구장
<더그아웃 매거진>과는 첫 만남이에요. 팬들에게 인사해주세요. (9월 23일 인터뷰)
먼저 이렇게 좋은 인터뷰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하고, 더 좋은 활약을 보여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 시즌 선발로 보직 변경이 되고 나서 유난히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어요. 불펜일 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불펜은 한 점 승부일 때 보통 많이 나가니까 1점이라도 주면 경기가 뒤집히잖아요. 그런데 선발은 초반에 실점해도 이닝을 끌고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저한테는 괜찮았어요. (그리고 올해는 구종에 슬라이더도 추가했잖아요.) 네. 5월 개막하고 초반에 너무 안 좋아서, 김원형 코치님이랑 많이 얘기하면서 슬라이더 연습을 했어요. 슬라이더 스피드가 한 130km/h 대 나오다 보니까 확실히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8월 29일 LG 트윈스전에서 개인 10연승을 앞두고 있었는데, 우천으로 서스펜디드 경기가 선언됐어요.
우천 취소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라서. (웃음) 어차피 계속 진행해도 그때 제가 손에 물집이 잡혀서 곧 교체됐을 거예요. 그렇게 크게 의미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시즌 초반에 대체 선발 투수로 시작한 게 무색할 정도로, 9월 5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개인 최다 이닝인 8이닝 소화에 퀄리티 스타트도 이뤘어요.
맞아요. 8월에 페이스가 괜찮아서 9월에도 이어가려고 집중하고 똑같이 준비했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어요.
투구 수 조절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초반에 볼 개수가 많아서 그 이후에는 공격적으로 하려고 했던 게 투구 수 조절에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속구만 던지는 게 아니라, 변화구로도 카운트를 잡다 보니까 투구 수가 확실히 적어지더라고요. (박세혁 선수와는 어떤 얘기를 하나요?) 항상 분석할 때부터 세혁이 형이 공부를 많이 해서 저한테 ‘이 타자는 약점이 무엇이고, 이런 점이 안 좋다’라는 얘기를 해줘요. 그런 부분에서 대화를 많이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좋지 않은 경기도 있었죠. 9월 18일 KT 위즈전에서는 6회 2아웃까지 잡고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어요.
그 전 경기였던 키움 히어로즈전에서도 1회에 2실점 하고, KT 때도 1회에 4실점을 했어요. 1회에 투구 수를 줄이면 더 갈 수 있는데, 항상 1회에 점수를 많이 주다 보니까 투구 수가 많아져요. 그래서 항상 전 경기랑 마찬가지로 딱 5.2이닝에 투구 수가 걸리더라고요. 투구 수를 조절하는 부분에서 좀 더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기 결과가 안 좋을 때 멘탈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요.
안 좋았던 건 좀 생각해본 다음에 그렇게 깊게 생각을 안 하거든요. ‘그 부분이 안 좋았구나’, ‘다음에 주의해서 던져야겠다’ 하고 그냥 잊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현재 두산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데 서로 어떤 말을 하면서 힘을 내고 있나요?
사실 많은 얘기는 안 하고, 항상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하고요. 선배들도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시고 있어요.
지금 이 시점에 두산 팀 내에서 얘기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팀 목표는 항상 정규시즌 우승인데, 지금부터라도 잘하다 보면 좋은 결과 있을 거로 생각해요. (그 가운데 팀에서 가장 파이팅 넘치는 선수는 누구예요?) 음, 안권수 선수요.
#흔들림 없이 묵묵히
형을 따라서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는데, 그때 얘기 좀 해주세요.
어릴 때 형이 먼저 야구를 시작해서 따라다니다 보니까 하고 싶어서 제가 엄청나게 졸랐거든요. (웃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그 길을 갔는데, 형은 결국 그만뒀어요. 그래도 제가 지금 잘할 수 있는 게 형이 옆에서 서포트를 많이 해줬거든요. 본인이 하면서 경험했던 것들도 얘기해주고, 힘든 거 알고 더 옆에서 챙겨주다 보니까 지금까지 잘할 수 있었어요. (형이랑은 몇 살 터울이에요?) 네 살 차이 나요.
선발, 중간, 마무리 셋 중 어느 보직이 가장 매력적이에요?
선발, 중간, 마무리 다 각각의 매력이 있다고 느껴요. 그래도 선발 투수가 처음 시작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선발 투수가 제일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투수 최원준의 매력은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맞더라도 항상 주눅이 들지 않고 자신 있게 피칭하는 게 가장 큰 매력이죠.
투구폼이 사이드암으로 굳혀지게 된 건 언제인가요?
초등학교 때부터 사이드암으로 던지기는 했는데, 중학교 때 야수도 하면서 완전히 사이드암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그때부터 쭉 굳히기로 했어요.
서울 토박이인데 학창 시절에 좋아했던 프로야구팀은 어디였어요?
두, 두산이요. (확실한가요?) 아니, 저도 지명받고 많은 말을 들어서요. 고등학교 때 썼던 프로필은 재미 삼아 한 거라서 솔직히 좋아하는 특정 팀은 없었는데요. 그래도 두산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웃음)
그럼 팀에 상관없이 최애 선수는 있었나요?
네. 임창용 선배요. (이유는요?) 제가 고등학교 때 임창용 선배께서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마무리 투수 하시는 거 보고 멋있어서 등번호도 12번 달고 했거든요. 엄청나게 좋아했죠. (혹시 친분도 있나요?) 아뇨. 따로 친분은 없어요. (웃음)
동국대 재학 당시에는 17승 2패라는 성적과 춘계리그 수상 등으로 대학 무대를 휩쓸었는데, 프로 지명을 앞두고 토미 존 수술로 공을 거의 던지지 못했어요. 1차 지명이 됐을 땐 어땠나요?
솔직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제가 수술하는 데에도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대학교에 계시는 감독님이 “너는 미리 수술해도 충분히 지명받고 갈 수 있으니까 미래 생각해서 수술해라”라고 얘기해주셔서 수술을 결정했어요. 그래도 1차 지명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두산에서 뽑아주셔서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7년 프로 입단 이후에는 갑상샘암으로 팀 합류가 늦어졌어요. 그때는 어떤 마음으로 버텼는지 궁금해요.
좀 많이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주위에서 다들 도와주고, 부모님도 많이 응원해주셨어요. 그리고 지금처럼 1군에서 뛰는 생각하면서 잘 버틸 수 있었어요.
프로에 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언제였나요?
작년 한국시리즈 4차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국시리즈는 엔트리에 포함돼 있지만 출전하지 않는 비출장 선수 2명을 내잖아요. 근데 2차전에 던진 (이)영하가 원래는 4차전에 들어가서 총력전을 하려고 했는데, 김원형 코치님이 잘못하셔서 저를 넣고 영하를 빼셨거든요. 던지고 나서 “너 하마터면 못 던질 뻔했다. 나 때문에 이런 경험한 거다”라고 얘기해주셔서 알았어요. 그날이 또 우승했던 경기여서 더 기뻤어요.
경기하면서 가장 짜릿하거나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위기 상황에서 막아냈을 때가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견제구 던지는 것도 자신 있다고 했는데 견제사를 잡았을 때는 어때요?) 견제구는 꼭 잡으려고 던지는 게 아니라서요. 세혁이 형이 주자 도루할 때 항상 사인을 주거든요. 그 타이밍마다 잡아서 자신 있다고 얘기했던 거예요. 근데 굳이 잡으려고 던지지는 않아요.
대졸 1차 지명 선배로서 지명받은 대졸 선수들에게 조언이나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대학교에서 배우는 게 참 많고, 스스로 많이 느끼면서 하다 보면 다 좋은 결과 있을 거로 생각해요.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재작년에 최동현에서 최원준으로 개명했어요. 부상이 잦아서 개명했다던데, 새로 바뀐 이름에는 어떤 뜻이 있나요?
뜻보다는… 제가 계속 다치고 3년 동안 수술도 3번이나 하고 그래서, 아프지 않으려고 한 게 가장 큰 부분이에요. (그럼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 그중에 고른 건가요?) 네. 근데 KIA 타이거즈에 최원준 선수가 있어서 좀 그랬는데, 그래도 이름 지어준 곳에서 이 이름이 제일 좋다고 하니까 선택했어요.
요즘에 몸은 좀 괜찮나요? 몸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몸 컨디션은 힘든 건 아직 없는데, 트레이닝 파트에서 웨이트를 중점적으로 해요. 확실히 선발이 처음이다 보니까 많이 배우고 있어요.
야구 외에 취미나 관심사는 어떤 게 있나요?
저는 당구랑 게임을 많이 해요. (당구는 몇 치세요?) 3구는 한 150 정도 치는 것 같아요. (그 정도면 잘 치는 건가요?) 아뇨, 그냥 평균 정도예요. (게임은 어떤 거 하세요?) 롤, 리그 오브 레전드요. (티어는요?) 네? 아, 얘기하면 욕먹을 것 같은데. (웃음) 그렇게 잘하지는 않는데, 같은 동료끼리 자주하고 있어요. (이유찬 선수도 롤 한다고 하던데, 같이 하는 건가요?) 아뇨, 유찬이는 저보다 실력이 더 낮아서 같이 안 하고. (웃음) (김)민규나 영하, (함)덕주, (박)치국이랑 다 같이 하고 있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고치고 싶은 점은 뭔가요?
마운드에서 급한 모습이 많이 나와요. 홈런 맞고 이랬을 때 급해지거든요. 근데 그걸 세혁이 형이 잘 컨트롤해주고 있어요. (야구 외에 성격 면에서 고치고 싶은 점은요?) 제가 방금 말했듯이 일상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라서 급한 성격을 고치고 싶은 게 있어요.
반대로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장점, 이건 정말 칭찬할 만하다 하는 건요?
음, 성실한 거? 성실한 거 말고는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이상형이 연예인 이영자 씨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아니에요. 그 소문도 좋아하는 프로야구팀 얘기할 때 나왔던 고등학교 프로필에서 생긴 것 같아요. 둘 다 한화 이글스의 하주석 선수가 장난으로 쓴 거예요.
두산 공식 유튜브에서 얼굴을 보기가 힘든데,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제가 항상 중앙 부분으로 다녀서 그런 것 같은데요. 굳이 안 나오려고 하는 건 아닌데 제가 옆에 있는 출입문으로 안 다니고 중앙문으로 다니거든요. 그래서 자주 안 나오는 것 같아요. (낯을 가리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네네.
예전 출근길 사진들을 보면 팬 서비스가 되게 좋아 보여요. 그런데 요즘은 팬분들 보기가 힘들잖아요. 기억에 남는 팬이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출근할 때마다 한 시간, 두 시간씩 기다려주시는 게 정말 감사해요. 제가 작년에는 눈에 띄게 뚜렷한 활약도 없었는데, 많이 응원해주시고 챙겨주셔서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함덕주, 이영하 선수와 제일 친하다고 했는데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서로 게임 얘기도 하고. (웃음) 제가 영하랑은 룸메이트여서 방에서 야구 얘기도 하고, 같이 TV 보면서 지내고 있어요.
그럼 팀에서 아직 어색한 선수도 있나요?
딱히 어색한 사람은 없는데. (친화력이 있는 편인가요?) 아뇨. 형들도 다 친하게 대해주고, 저희 팀은 어색하거나 서먹한 게 거의 없어요. 처음 올라와도 다들 친하게 해주고 반겨주고 해요.
최원준 선수 별명 중에 제일 잘 알려진 게 똥파리밖에 없어요. 혹시 팀 내에서 지어준 별명이나 새로운 별명 있을까요?
아뇨, 아뇨. 똥파리는 어릴 때 별명이에요. 지금 그 별명은 안 듣고 있어요. (새로 생긴 별명은 없어요?) 없어요.
팀 내에서 가장 닮고 싶은 선배는 누구인가요?
이현승 선배님이요. 같은 유형의 투수는 아니지만, 나이도 있으신데 항상 지금도 꾸준히 경기 나가면서 열심히 하시는 모습 보면서 많이 배우고 따라가고 싶은 선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최원준 선발을 원해요!
팬들에게 최원준 선수를 각인시킬만한 자기 이름 삼행시 부탁해요.
이름 삼행시는 생각 안 해봤는데. (제가 운 띄워 드릴게요. 최!) 최원준 선발을. (원.) 원하십니까? (준.) 준비하겠습니다. (오, 괜찮은데요!)
혹시 예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던 오자 토크 아시나요? 자신을 다섯 글자로 표현한다면?
저 자신이요? 사이드 투수? (사람으로서는?) 성실한 선수?
야구 선수로서 꼭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타이틀이 있는지 궁금해요.
저는 한국시리즈 MVP 한번 해보고 싶어요. (올 시즌 목표는요?) 올 시즌은 딱히 세워놓은 게 없고요. 저는 항상 선발 로테이션 끝까지 도는 게 목표라고 말해요.
사람 최원준으로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사람들이 봤을 때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최원준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인가요?
행복이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 수술하고 많이 힘들 때 야구 보면서 버틸 수 있게 해줬고, 팀이 잘하면 좋고. 그리고 제가 지금 1군에서 뛰는 거 보면 저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지금 팀이 많이 밑에 내려와 있는데, 저도 더 분발하고 많이 기여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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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危機)와 기회(機會)의 ‘기’는 같은 글자를 쓴다. 어쩌면 위기 속에는 항상 기회가 존재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최원준은 이번 시즌 그 기회를 잡았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암이 재발했을 때 ‘어렸을 때 운을 좀 많이 받았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최원준의 시즌이 찾아온 것을 보면, 현재 서 있는 길보다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더라도 내일은 오르막길을 오를 수도 있지 않은가. 마운드 위에서는 배짱 있는 투수이다가도, 인터뷰할 땐 조곤조곤히 자기 생각을 전하는 27세 청년 최원준. 말수가 조금 적은가 싶다가도 야구 얘기를 할 때 말이 길어지는 걸 보면 그에게 야구는 정말로 ‘행복’인 듯싶다. 어떤 길을 걷더라도 그가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 더그아웃 매거진 115호 표지